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남침하면서 시작된 한반도의 전쟁입니다. 한국전쟁(Korean War)이라고도 부르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약 3년 1개월, 정확히는 1,129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한반도는 1945년 광복 이후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고 전쟁을 준비했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개전 초기 국군은 무기와 보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워 빠르게 남하해 사흘 만인 6월 28일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단순한 내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즉각 북한의 침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했습니다. 전투 병력을 보낸 나라가 16개국, 의료를 지원한 나라가 6개국으로, 참전국만 22개국에 이릅니다. 물자와 재정까지 포함하면 60개국이 넘는 나라가 대한민국을 도왔으며, 이는 하나의 나라를 위해 가장 많은 국가가 힘을 모은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던 전세는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단숨에 뒤집혔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28일 서울을 되찾고 38선을 넘어 북진했지만,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다시 후퇴(1·4 후퇴)하는 등 전선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습니다. 이후 38선 부근에서 2년 가까이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다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총성이 멎었습니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평화조약이 아니라, 전투 행위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국제법상 한국전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국군 13만여 명이 전사했고, 유엔군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남북한을 합친 한국인의 인명 손실은 수백만 명에 달했습니다. 1,000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도 이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입니다.
폐허가 된 땅 위에서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6·25 전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비극을 되새기는 일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이름도 낯선 먼 나라에서 달려와 피를 흘린 이들의 헌신을 잊지 않는 일입니다. 아래에서 전쟁의 전개 과정, 주요 전투, 인물, 참전국, 그리고 2026년 추모 행사 정보까지 하나씩 살펴보세요.